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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30일 금요일

[실리콘밸리 한 달 노트 #7] 마루 SF 방문기


 

스타트업 창업 열기가 한창이던 2014년 4월, 스타트업과 초기 투자사의 입주 공간인 ‘마루180’이 ‘구 역삼세무서 사거리’라 불리던 동네에 문을 열었다. 그보다 한 달 전에는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선릉역 인근에서 개소식을 했고, 민간 창업지원 기관 중 제일 큰 형인 ‘D.Camp’의 선릉 공간 개소는 2013년이었다.

스타트업 생태계 조성과 지원이라는 뜻을 함께하는 동지들이라 우리는 늘 화목하게 지냈다. 지원기관 매니저 단톡방은 연사 섭외 부탁과 정보 공유로 늘 분주했고, 기관별로 매월 돌아가며 여는 저녁 식사 자리도 있었다. 코로나 전에는 기관들이 연합해 송년 파티를 개최할 정도로 가까운 이웃사촌이었다.

2025년 11월, 드디어 우리 중 첫 주자로 아산나눔재단이 미국에 진출했다. 실리콘밸리 본진에서 2년간 준비했던 ‘마루SF’의 개소식을 성대히 열었는데, 그날 갔으면 참 좋았겠으나 바쁜 척하느라 못 갔고 지난주에야 호젓하게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준비 과정에서 여러 분을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하다는 사죄를 먼저 올리며 방문기를 시작한다.

 

마루SF를 대하고 처음 든 느낌은 사무실이 아니라 캠퍼스, 그러니까 영화 ‘소공녀’에 등장할 법한 작은 기숙학교였다. Gemini에 따르면 전체 부지는 670평이며, 구글 어스로 보니 예전에는 본채와 별채, 큰 차고와 넓은 안마당이 있었다. 우선 기존 본채와 별채는 완전 개보수를 거쳐 창업자들의 숙소가 되었다. (위의 사진이 본채 외관과 내부 거실의 주방 부분)

 

4베이 차고는 창고 겸 다용도 공간으로 변했다. 마루SF 캠퍼스의 정중앙에는 이제 더 이상 차를 보관하지 않는 차고가 자리한다. HP부터 시작해 유수한 IT 기업들이 차고에서 시작했다는 실리콘밸리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위의 사진이 4-bay 차고)

 

창업 공간을 일반 사무실처럼 꾸미지 않고 ‘캠퍼스’로 만드는 것은 미국 스타트업의 오랜 전통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은 워싱턴 레드먼드로 본사를 옮기던 1986년부터 ‘캠퍼스’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직원들이 학생이나 연구원들처럼 토론하고 탐구하기를 바랐다. Apple, Google, Meta 역시 ‘캠퍼스’라는 단어를 혼용한다.

마루SF도 경내에 아름드리나무들이 있고, 시멘트 포장 대신 바크(bark)로 마당을 덮었다. 자연만이 줄 수 있는 평화로움을 그렇게 주거 공간 안으로 가져왔다. 고국과 가족을 떠나 미국에서 시간과의 전투를 벌이고 있는 창업자들이 경내를 산책하며 잠시나마 숨 돌릴 여유가 있기를 바란다.

 

안쪽 공터에 신축한 두 동의 쌍둥이 건물은 각각 사무실과 밋업 공간으로 쓰인다. 두 건물 사이를 데크로 잇고 야외용 가구를 배치했는데, 마주 보는 폴딩 도어를 활짝 열어젖히면 큰 규모의 행사도 주최할 만한 공간이 나온다. (왼쪽이 사무 공간, 오른쪽이 미팅 홀)

 

본채 내부에는 정주영 선대회장님의 친필 어록과 오래된 사진들이 있다.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운 1세대 기업가 중 진정한 Do-er 타입의 창업가는 “임자, 해봤어?”로 기억되는 정주영 회장님이다. 그 정신이 핏줄을 타고 내려와 스타트업들에게 비용을 받지 않고 공간과 편의, 멘토링 같은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 후손들이 스타트업 생태계에 베푸는 정성 또한 이 시대에 보기 드문 고귀한 선행이다. 이렇게 의미 있는 공간에서 시간을 보낸 스타트업 임직원들도 먼 훗날, 후배들을 위해 pay-it-forward 한다면 멋질 것 같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높다란 교회 천장이 있는 거실, 그리고 침실과 각 방에 할당된 전용 화장실, 방 안에는 침대 수와 일치하는 작은 책상 등, 2주 체류에 불편함은 없어 보였다. 침실은 2인실과 3~4인실이 있는 것 같다. (위는 2인실 사진)

 

여러 회사에서 온 젊은이들이 서로 이야기 나누기 좋을 만한 공간으로, 본채 한 귀퉁이에 포치(porch)를 꾸며 놓았다. 1층 거실에서 저녁밥을 먹고 맥주 한 캔씩 들고 5m만 이동하면, 이슬을 맞지 않으면서도 쾌적한 북가주의 밤공기를 즐길 수 있다.

 

마루SF에 침실이 있다고 해서 일반 주택과 같을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세탁기와 건조기는 별도 건물에 두어 생활 소음을 줄였다. 관리를 맡은 스타트업의 담당자가 수시로 드나들며 불편함이 있을까 챙기고 있다. 아직 100일도 안 된 초기인 만큼, 앞으로 운영하면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오류들도 잡아 나갈 것이다.

창업자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최대한 익명 속에 있기를 바라는 아산나눔재단의 취지에 십분 공감하기에 나도 ‘마루SF’의 위치 정보는 올리지 않겠다. 그러니까 어디냐고 묻지 마시길. 못 가시는 분들 보시라고 다른 포스팅보다 사진을 많이 넣었다. (마지막 사진은 숙소로 쓰이는 별채)

 

 


🗒️ 실리콘밸리 한 달 노트 시리즈 | by.기대
한 달 동안의 출장에서 만난 사람과 생각을 ‘관찰 노트’로 기록하고, 메모를 바탕으로 지금 한국에서 통하는 힌트와 질문을 꺼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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