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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1월 28일 수요일

[실리콘밸리 한 달 노트 #6] 미국 진출: 플립과 국외창업기업 제도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발간한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25년판을 보면 흥미로운 지표가 하나 있다. 투자를 받아본 창업자 200인 중 해외 진출을 고려조차 해 본 적 없는 경우는 단 6.5%에 불과하다는 것. 이제 창업씬에서 ‘글로벌’은 선택이 아닌 기본값이다.

미국 진출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플립(Flip)’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 것이다. 사실 10년 전쯤, 지금은 DLG 로펌 대표가 된 안희철 변호사의 플립 강의를 처음 들었을 때, 흡사 ‘도깨비놀음’ 같았다. 미국에 법인을 세우고 그 법인이 한국 기업을 100% 인수하게 한 뒤, 기존 한국 주주들에게 방금 만든 아무것도 없는 미국 법인의 주식을 나눠 준다고? “그걸 누가 해?”

언제나 그렇듯 나는 세상을 잘 모른다. 지난 10년간 무수히 많은 스타트업이 플립을 시도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하거나, 플립에는 성공했지만 정작 현지 투자를 끌어내지 못해 다시 한국으로 ‘역플립’을 선택하는 사례도 부지기수였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전적, 시간적, 사회적 낭비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다.

섣불리 뛰어들면 낭패 보기 딱 좋은 곳이 미국 시장이다. 최근 멘로파크 ‘스타트업 벤처 센터’ 설명회에서 법무법인 미션의 김성훈 대표변호사 발표를 들었다. 미션은 아마도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케이스를 가장 많이 수행하는 로펌일 것이다. 아래는 성훈 변호사의 발표 내용 중 핵심을 메모한 것이다.

 

1. 국경이 높아지는 시대, ‘현지 법인’은 필수

지난 30년간 우리는 국경이 낮아지고 자유무역이 당연시되는 세상을 살아왔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해 전 세계가 하나로 통합되는 듯 보이던 흐름은 역설적으로 각국의 국경을 다시 높이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젠 사업을 하려면 고객이 있는 나라의 ‘국민(법인)’이 되어야만 생존할 수 있는 세상이다. 초거대 국가들이 주권 국가를 압박하거나 침략해도 누구 하나 선뜻 나서서 말려 주지 않는 냉혹한 국제 정세이기도 하다. 이제는 대리점을 통한 수출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 직접 법인을 세우고 운영하는 ‘크로스보더 컴퍼니(Cross-border Company)’로 진화해야 한다.

 

2. 한국 스타트업의 생존법: ‘양서류 전략’

김성훈 변호사는 이를 ‘양서류 전략’이라 불렀다. 올챙이가 물속에서 아가미로 호흡하다가 개구리가 되면 뭍으로 나와 폐로 호흡하듯, 스타트업도 성장 단계에 맞춰 호흡법을 바꿔야 한다. 초기 투자는 풍부하지만 회수 시장이 빈약한 한국에서 오직 코스닥 상장만 바라보고 있다면, 글로벌 수준의 성공은 난망하다.

다행히 작년에 중기부에서 ‘국외 창업기업 지원 제도’를 마련했다. 창업 7년 이내이고, 한국인이 대주주이며, 한국 내 사업장이 있다면 본사가 미국에 있더라도 대한민국 자본이 투자하는 데 차별받지 않는 길이 열렸다.

 

3. 미국 VC와 한국 VC, 자본의 철학이 다르다

미국 VC로부터 투자를 받는다는 건 단순히 돈만 들어오는 일이 아니다. 그들의 투자 철학과 관행, 법률 시스템이 통째로 들어오는 것이다.

  • 의사결정 구조: 한국 VC는 개별 동의권을 가지고 창업자에게 각자 목소리를 내지만, 미국 VC는 ‘집합적 동의권’을 행사한다. 개별 목소리를 내기보다 이사회를 통해 일원화된 요구를 한다.
  • 주식회사 철학: 델라웨어 회사법에는 한국식 ‘풋옵션(주식매수청구권)’이 없다. VC가 어느 날 갑자기 “내 돈 돌려 주고 네 주식 가져가”라고 요구할 권리가 아예 인정되지 않는다. 대신 창업자가 반대하더라도 창업자 지분까지 끌어다 파는 Drag-along(동반매각청구권) 조항을 매우 공격적으로 사용한다.
  • 이사회 중심 경영: 창업자의 뜻에 휘둘리는 한국식 이사회와 달리, 미국 VC는 모든 요구사항을 이사회를 통해 공식화하며 철저히 이사회를 중심으로 경영을 압박한다.

 

4. 무리한 ‘플립’보다 현명한 ‘쌍둥이 법인’

많은 스타트업이 ‘플립’을 고민한다. 하지만 기존 한국 VC 주주들의 동의를 얻는 것부터가 난관이다. 그들은 미국 시장을 잘 모르고, 관리도 부담스러워한다. 결정적으로 이스라엘과 달리 한국 정부는 플립 시점에 창업자에게 양도세를 징수한다. 기술적으로는 두 달이면 마칠 수 있는 작업이지만, 자금이나 세무 준비 없이 감행하는 ‘급한 플립’이 가장 위험하다.

대안은 ‘쌍둥이 법인’ 모델이다. 한국 법인을 없애지 않고, 미국에 동일한 주주 구성으로 법인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어느 한쪽 법인에서 Exit이 발생하더라도 모든 주주가 똑같이 혜택을 볼 수 있다.

 

——

김성훈 변호사의 발표 중 가장 마음에 남은 말은 “플립 중에 가장 안 좋은 것이 급한 플립이다”였다. 글로벌 진출도 창업의 목적이 아니라 성공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하물며 플립에 사활을 걸 일은 아니라고 본다. 처음부터 미국에서 창업해도 한국 VC의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국외창업기업 제도도 생겼고, 보조를 맞추느라 국내 VC들의 미국 진출도 활발해졌다. 성공 가능성이 낮은 플립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시간을 갖고 대안을 찾아보자. 꼭 해야 한다면, 천천히!

 


🗒️ 실리콘밸리 한 달 노트 시리즈 | by.기대
한 달 동안의 출장에서 만난 사람과 생각을 ‘관찰 노트’로 기록하고, 메모를 바탕으로 지금 한국에서 통하는 힌트와 질문을 꺼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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