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1월 19일 월요일
[실리콘밸리 한 달 노트 #2] 낯선 도시에서 만나는 따뜻한 타임머신 ~미국 도서관 방문기~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면 나는 종종 도서관을 찾는다. 이번 미국 출장에서도 에어비앤비에 짐을 풀고 근처 ‘트레이더 조(Trader Joe’s)’에서 비상식량으로 물과 김밥을 챙겨 나오다, 그 길로 인근에 있는 산카를로스(San Carlos) 공립도서관에 들렀다.
도서관을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부설 중고 서점에서 책 두 권을 4달러에 샀다. 얼바인에서 아이들을 키우던 시절에는 권당 25센트면 충분했는데, 인플레이션에서 지나가버린 세월을 새삼 실감했다.

* 시차 뒤집어져서 잠 안 올 때 읽으려 산 책들
도서관은 인류가 창조한 지식의 정수를 모아놓은 곳이자, 다음 세대로 문명을 이어주는 통로다. 만약 현대의 디지털 문명이 예기치 못한 이유로 사라진다면, 생존자들은 도서관의 아날로그 책들에 의지해 세상을 재건할지도.
도서관의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설 때면 과거와 미래로 ‘타임슬립’이 일어난다.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아둔한 머리를 탓하던 학창 시절로 돌아가기도 하고, 은퇴 후에 도서관에서 빈둥대는 먼 미래의 나를 미리 보기도 한다.

* 산 카를로스 도서관
도서관에서는 말끔한 수트 차림에 머리를 단정히 넘긴 고소득 전문직 스타일의 ‘육각형 인간’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대신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한 걸을 비껴난 노인들이 조용히 신문을 읽거나 책장을 넘기고 있다. 인생의 어느 한 페이지에서 링 밖으로 밀려났더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는 소중한 안전지대가 도서관이다.
도서관은 그 도시의 경제력과 지식 수준을 한눈에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의 지방자치 제도는 시민들이 내는 세금으로 그 도시의 길을 닦고 경찰과 소방관의 급여를 줄 뿐 아니라, 아이들이 공부할 학교와 도서관을 짓고 운영한다. 모르는 도시를 방문했을 때 도서관을 찾아가면 공짜 와이파이와 깨끗한 화장실을 빌려 쓸 수 있고, 그 도시가 얼마나 여유로운지도 금방 파악 가능하다.
나는 도서관이 가장 미국스러운 장소라고 생각한다. 40여 년 전 카투사 시절에 처음 접했던 부대 도서관이나, 20년 전 이민자 시절에 찾던 도서관도 늘 평화롭고 너그러웠다. 외국관광객이 아닌 그 지역의 주민들, 정확히는 납세자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 시설이라서 그런 것이라 생각한다. 혹시 미국은 가봤어도 도서관 방문할 시간까지는 없었다면, 다음엔 한 번 들려봐도 괜찮다. 워낙 흔해서 도시 안에서는 어느 방향으로든 10분만 운전하면 하나쯤은 있을 테니까.

* 레드 우드 시티 도서관의 랩탑 대여기
지난 일주일 사이에 만난 세 도시의 도서관은 저마다 다른 매력을 품고 있었다.
- 산카를로스(San Carlos): 이 지역의 여유로운 경제력을 증명하듯 지상과 지하에 넉넉한 주차 공간을 갖춘 점이 인상적이었다.
- 레드우드 시티(Redwood City): 번화가에 자리 잡은 건물은 마치 고풍스러운 미술관 같았다. 노트북을 대여해주는 키오스크가 설치된 모습에서 실리콘밸리다운 실용성이 느껴졌다.
- 산호세(San Jose): 8층 규모의 웅장한 ‘MLK 도서관’은 산호세 주립대학교와 시가 함께 운영하는 통합형 도서관이었다. 시내 중심가답게 노숙인들도 보였지만, 샌프란시스코에 비하면 냄새도 훨씬 덜하고 전체적으로 더 정돈된 분위기였다.

* 산호세 공립도서관 겸 SJSU 대학 도서관
🗒️ 실리콘밸리 한 달 노트 시리즈 | by.기대
한 달 동안의 출장에서 만난 사람과 생각을 ‘관찰 노트’로 기록하고, 메모를 바탕으로 지금 한국에서 통하는 힌트와 질문을 꺼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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