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12일 토요일
[미국 진출 이야기] 미국인의 인맥

올해가 미국 독립 250주년이다. 200주년이 되던 해에는 기념 우표를 사러 우체국에 가던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는데, 50년이 지나고 보니 깎을 머리카락도 별로 안 남았다.
미국은 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모여 치열한 전쟁을 거치고 나라를 세웠는데, 독립전쟁의 영웅이었던 워싱턴 장군은 그 시대의 가장 보편적인 통치 체제인 왕정의 정점에 오르지 않았다. 추대 시도가 빗발쳤으나 사양했고, 대통령이라는 훨씬 소박한 자리에 올랐으며 연임 금지 조항도 없던 시절에 두 번 하더니 더 이상 출마하지 않았다.

왕이 되지 않은 장군
당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또한 독립전쟁에서 공을 세운 장군들에게 귀족 칭호를 내리지 않았다. 대신 새로 만든 헌법에 귀족 작위 수여 금지 조항을 넣었다. 한 국가의 구성원 사이에 계층을 두지 않는 이런 방식은 당시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새로운 접근이었다. 왕가의 혈통 대신 국민의 합의로 정권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시대를 생각해 내고 구현한 최초의 나라가 미국이다.
그러나 본인이 이룬 것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세습의 유혹은 인간의 본능이다. 재산뿐 아니라 본인이 일군 명성까지 물려줄 방법을 찾던 세속적이고 평범한 부유층들이 유럽의 작위 제도를 대신해 구축한 시스템이 명문 사립학교였다. 미국에 살면 누구나 집 근처 공립 고등학교를 무료로 다닐 수 있는데, 매년 1억 원이 넘는 등록금이 드는 사립 기숙 중고등학교 입학에 치열한 경쟁이 붙는 이유다. 미국의 주류 계층이라 할 백인 정치가와 자산가들은 자식들을 사립학교에 보내 대를 잇는 네트워크를 만들어주었다. 예전에 동아일보사에서 나왔던 번역서 『학벌은 왜 세습되는가?』의 저자인 대니얼 골든은 WSJ에서 이 문제를 파헤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재산뿐 아니라, 네트워크도 물려준다.
그들이 구축했던 학벌 세습의 아성에 최초로 상처를 낸 집단이 100년쯤 전 동유럽에서 밀려온 유대인이었고, 이들의 명문대 독점을 막기 위해 SAT와 입학사정관 제도, 동문 자녀 우대 등이 등장했다. 그리고 두 번째 도전이 SAT 시험마저 잘 보는 아시아계 학생들이었다. 결국 하버드를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소한 아시아인들이 등장했고, 그 결과 흑인과 히스패닉의 합격률이 낮아지는 결론을 얻었다.
이런 옛날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미국의 입학 사정 방식이 얼마나 편향되어 있는지, 얼마나 불공정한지를 말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이 왜 그런 제도를 만들었고, 그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데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사전 지식을 공유하는 차원에서 적었다.
최근 미국의 어느 사립 기숙 고등학교가 학교 발전기금 캠페인을 마쳤는데, 목표 금액인 2억 5천만 달러를 초과해 3억 달러 이상을 모았단다. 그 학교에서 1년에 졸업하는 인원은 불과 150명이다. 그렇게 큰 금액을 모교에 기부하는 것은 (자신의 자식이나 손자가 그 학교에 입학하려는 목적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그 사람이 체리피커가 아니며 적어도 받은 만큼을 돌려줄 준비가 된 사람임을 보여주는 대리 지표가 된다.

결국 미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은 제품과 서비스가 이 시장에서 먹힌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물론 진출 초반에는 잘 느끼지 못하겠지만, 주변에 한국인 친구들밖에 없다 보면 그런 것을 느끼게 되는 시점이 온다. 돈을 벌 능력이 있다는 것과 그들이 나를 자기들의 네트워크 안으로 받아들일 이유가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미국에서 통하는 사람은 “나는 이런 사업을 해서 돈을 벌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보다 “나는 당신들과 함께할 자격이 있고, 당신들이 가진 것을 존중하며, 나도 이 관계에 무언가를 보탤 사람입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돈 벌러 온 외국인으로 끝나면 안 되고, 새로 이사 와서 동네 파티에 처음 초대받은 이웃이 되어야 한다. 계속 교류하려면 최소한 받은 것은 다시 돌려줄 사람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 미국 진출 이야기 | by.기대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과 관련된 인사이트를 기록으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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