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09월 20일 일요일
[실리콘밸리 출장기] 2026년 9월의 Bay Area

California Dreaming 1기를 도와줄 연사이자, 수료 이후에는 현지 멘토가 되어줄 분들을 찾으러 지난주 미국에 다녀왔다. 출장 일정이 짧아 접한 정보가 많지 않았고 당연히 표본오차도 있으니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바란다.
우선 요즘 스타트업 생태계가 가라앉아 있다는 점에서는 한국과 Bay Area의 한인 생태계가 비슷하다. 내가 1월에 한 달 동안 베이에 머물 때는 꽤 핫했다. 특히 UKF를 참관하러 한국에서 온 학생들과 젊은이들로 가득 찼던 Fox Theater의 열기는 대단했다.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식었을까. 여러 사람에게 물어보고 나름대로 추측해보니 대략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높은 Burn Rate다. 모르고 온 것은 아니겠지만 지내보면 정말 모든 게 비싸다. 서울보다 최소 세 배쯤 될까. 밥값, 방값, 직원 급여가 모두 비싸다. 그래서 정부 지원기관의 패키지에 업혀 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제 발로 진출하겠다며 찾아오는 사람부터 감소했다. 온다 해도 대표나 C레벨이 출장으로 오지, 현지 채용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현지에 법인만 만들어놓고 직원은 없다.
사실 직원 없는 껍데기 법인 유지 비용과 직원을 두는 비용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특히 직원의 비자까지 스폰서해줘야 한다면 사무실 임차 비용까지 들어가니 더 비싸진다. 비자가 필요 없다면 재택근무를 하거나 공짜 사무실을 쓰면 되지만, 비자 때문에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그래서 채용이 일어나는 경우에도 딱 맞는 적임자를 찾기보다는 비자 문제가 없는 현지 교민 중에서, 부르는 게 값인 잘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적인 보상 수준에 합의할 만한 이성적인 사람이 채용된다. 요즘 무지 잘 나가는 반도체 업계는 빼고.
트럼프 정부의 H 비자 비용이나 OPT·CPT 소지자 채용 시 발생하는 비용 등 여러 노이즈도 있지만, 그것도 크게 보면 비용의 범주에 들어가므로 여기서는 따로 다루지 않겠다.

둘째는 여전히 강력한 LLM들이다. 10년 전 이맘때 On Demand 모델이 우점종이던 스타트업 생태계와 비슷하다. 당시 IR을 하는 창업자에게 VC들이 늘 묻던 질문이 있었다.
“네이버나 카카오가 이쪽에 진출한다면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그런 플랫폼 리스크와 비슷한 것이 요즘 LLM의 기능 업데이트다. 프롬프트를 깔끔하게 감싼 Thin Wrapper 서비스는 LLM이 기능을 업데이트하면 BM 자체가 사라진다. 지금도 그런 일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미국에 왔다가 사업을 접거나 피벗하고 돌아가는 스타트업도 적지 않다.

셋째는 한인 사회로의 확장성 실패다. 음, 그런데 공개된 글에서 ‘실패’라고 단정하는 것은 조금 조심스러우니, 피로도가 매우 높다고만 하겠다.
여기서 약간의 배경 설명을 깔고 시작하겠다. 나는 40대 초반에 Bay Area에서 월급쟁이 생활도 잠깐 했지만, 얼바인에 살며 LA에서 사업했던 기간이 훨씬 길다. 많은 분들이 LA에도 가봤을 테고, 스타트업이 AI 개발에 특화된 곳이 아니라면 LA 이전을 고민했을 가능성도 있으니 두 지역을 한꺼번에 이야기해보겠다. 이 둘은 한인 사회의 구성 측면에서 꽤 차이가 있다.
아시안 비율은 Bay Area가 LA보다 두 배 이상 높은데, 한인 비율은 두 배 이상 낮다. 이 두 조건을 합치면 LA에서 아시안처럼 생긴 사람이 한국인일 가능성이 Bay Area보다 네 배는 높다. Bay Area의 한인들은 숫자만 적은 게 아니라 좋은 직장을 갖고 있고 많이 배운 사람들의 비중도 높다. 반면 LA는 저변이 더 넓다. 의류 제조·도매업인 Jobber 시장을 한인들이 쥐고 있고, 그 기반에서 Forever21도 탄생했다. 한인 사회 역시 다수의 블루칼라와 소수의 화이트칼라가 섞여 있다.
한국에서 스타트업들이 미국에 왔을 때 우선 의지하는 대상은 미주 한인들이다. 한인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사업하는 변호사나 회계사, 부동산 중개인 등은 고객이 왔으니 따뜻하게 맞아줄 것이다. 하지만 정산이 딱딱 떨어지지 않는 관계도 많다.
직원으로 일할 사람을 소개받거나, 거래처가 될 가능성이 있는 기업을 소개받거나, 투자자를 소개받는 일, 심지어 구글 같은 IT 기업을 방문해 밥을 얻어먹는 일조차 이 범주에 속한다. 한쪽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는데 반대쪽은 ‘고맙다’로 끝나는 것이다.
원래 미국에 갔으면 Korean American 말고 ‘American American’을 만나야겠지만, 그 허들은 높기도 하고 돈도 든다. 그러니 당장 만만한 학교 선배, 직장 선배 또는 친구가 아는 형이 한국말을 한다는 죄로 불려 나온다. 만나서 일이라도 팍팍 진행되면 덜 피곤한데, 지원기관이 데려온 친구들이다 보니 준비도 부족하고 절실함도 떨어지는 경우가 있어 부정적인 경험치가 쌓인다.
......
매우 안 좋은 이야기만 했지만, 사실 이런 문제들은 극복의 대상이다. 상황이 안 좋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애초에 미국에 진출하려는 근본적인 이유가 시장이 우리에게 친절해서, 환대받으려고 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난관은 포기의 사유가 아니다.
한국에 시장이 없어서 글로벌 시장으로 나가야 한다면 미국에 본사를 두는 게 맞다. 영업을 제대로 하려면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대가를 지불하는 게 맞다. 더 나아가 진짜 ‘American American’도 고용해야 한다.
투자 업계에서는 특정 연도에 투자받은 창업팀들의 성과를 묶어 보는 개념으로 ‘빈티지(Vintage)’라는 말을 쓴다. 업계 사람들은 2012년 빈티지가 가장 좋았고, 코로나19가 덮치기 직전인 2019년이 가장 좋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생태계에 있었던 내 기억으로는 2019년은 경영컨설팅 출신들까지 뛰어들 정도로 스타트업 판이 흥했고, 2012년은 모두가 눈치만 보던 시절이었다.
시장 분위기만 봐서는 모른다.
🗒️ 실리콘밸리 출장기 | by.기대
26년 9월 Bay Area 출장 후 감상을 기록으로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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